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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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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작성자 공군발전협회
작성일 2019-09-25 조회수 3092
첨부

이라크 전쟁 (2003.3.20 ~ 4.14)

 

1. 전쟁의 배경

1991년 4월 걸프전쟁이 종결된 이후, 이라크는 미국으로부터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고 UN안보리의 사찰 요구를 거부하고 있었다. 이라크는 자국에 대한 금수조치의 해제 없이는 사찰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라크와 미국의 관계가 계속 악화되고 있던 2002년 1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이라크를 이란 및 북한과 함께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에 포함시켰다. 이때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보유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성을 강조하면서 후세인 정권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 해 9월, 부시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이라크에 WMD 즉각 폐지, 테러지원 중단, 국민억압 중지 등 5개항을 요구하며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후세인 정권을 축출하겠다고 천명하였다. 그리고 국가안보전략보고서를 통해 테러세력의 본거지와 지원세력에 대하여 선제행동을 취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년 11월, UN이 안보리 결의 1441호를 채택함으로써 이라크에 대한 사찰이 이루어졌다. 2003년 1월, 사찰이 만족스럽게 진행되지 않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후세인 정권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표명한 가운데, 후세인 정권의 자발적인 무장해제를 요구하였다.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이 거부할 경우, 무장해제를 위해 군사적으로 공격하겠다고 공표하고, UN 사찰단이 이라크의 WMD 활동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자, 후세인에게 최후의 통첩을 발송하였다. 3월 18일, 후세인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였고, 3월 20일,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함으로써 이라크 전쟁은 시작되었다.
전쟁은 미영 연합군이 후세인 정권의 근거지인 바그다드의 티크리트를 함락시키고 미 국방부가 대규모 전투의 종결을 선언한 4월 14일까지 26일간 진행되었으며, 연합군의 작전 수행 형태에 따라서 아래와 같이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2. 전쟁의 과정

전쟁 개시 이전 연합군은 걸프전쟁 이후 계속된 이라크 방공망 공습을 통해 제공권의 대부분을 이미 확보한 상태였으며, 이러한 여건을 토대로 전쟁 개시와 함께 제한된 공습을 수행하였다. 덧붙여, 이라크 지휘부 제거하는 ‘참수공격’(Decapitation Attack)을 위하여 후세인과 지휘부에 대한 제한된 수량의 토마호크 미사일과 정밀 유도폭탄을 사용하였다.
공격은 정찰위성, 유·무인 정찰기, 특수전요원에 의해 후세인의 거처를 확인하고 국가안보기구의 신속한 결심 과정을 거친 후 개시되었다. 공중 공격의 표적은 바그다드 티크리트에 위치한 후세인 거주지역, 군사 지휘부, 야전군의 통신시설, 바스라 지역의 화학무기 투발수단, 그리고 서남부지역에 위치한 방공망 등이었다.
선별된 표적들을 공격하는 동안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폭격의 규모를 제한하였으며, 이는 이라크 지휘부를 신속히 제거하면서도 이라크 주민이나 병사들의 항전 의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라크 공군은 개전당시 300대 이상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연합군의 공격이 수행되는 동안 완전한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연합군의 선별적이고 제한적인 공격을 통하여 지휘부를 제거하지 못하였음이 알려지자 연합군은 “충격과 공포”(Shock & Awe) 작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3월 21일, 연합군은 ‘A-day`를 선포하고 본격적인 대규모 공습을 시작하였다. 이 단계가 수행되는 동안 모래폭풍이 발생하였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1일 약 1,500∼2,000 소티를 출격하였고 이 중 700∼800 소티가 공격에 투입되었다.
연합군은 전투기 및 폭격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에 의한 이라크 전 지역의 전략표적에 대해 지속적인 공습을 실시하였으며, 특히 바그다드 공략을 위해 대통령 궁, 군사 지휘부, 공화국 수비대 등에 대한 집중 폭격을 병행하여 전투력을 무력화시켰다.
도심지역에서는 이라크 정규군에 의한 산발적인 저항과 사담 페다인 민병대에 의한 비정규전을 무력화시키고 지상군을 진출시키기 위해 근접항공지원 임무를 실시하였다. 3월 26일에는 이라크 방송시설 대한 e-폭탄(BLU-114) 정밀폭격으로 이라크 국영 방송이 45분간 중단되고 일부 시설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전쟁에 관련된 선전방송을 차단하였으며, 심리전 일환으로 이라크 군의 와해와 투항을 유도하기 위해 전단을 살포하고 사담국제공항을 점령하여 바그다드 공격을 위한 거점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연합군의 대규모 공습작전 수행 결과, 이라크군은 조직적인 저항을 할 수 없었다.
바그다드 일대에 배치된 공화국 수비대들은 공습으로 인해 제대별 손실이 증가(약 20∼80% 손실율)하여 도시로 산개하여 재배치되었으며, 북부와 남부지역에 배치되었던 정규군단 예하 일부 부대들은 바그다드 방향으로 남하 중 연합군의 근접항공지원작전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연합군은 걸프전쟁과는 달리, 대규모 공습의 개시와 함께 지상군을 투입하였다. 이로 인해 지상군 공격 역시 이라크의 저항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진격을 시작하여, 3월 24일에는 바그다드 남방 80km까지 접근하였다. 지상군은 3월 28일 재개된 항공폭격의 지원을 받아 4월 4일까지 바그다드를 포위하고 시가전을 수행할 준비를 진행하였다.

3. 교훈 분석

가. 항공력은 전쟁 승리의 핵심 요소 재확인
나. 핵심표적에 대한 동시공격을 통한 효과 극대화
다. 항공무기의 획기적 발전
라. ‘Real Time Sensor to Shooter’의 실현 가능성 증명
마. 물리적/심리적 마비전략 적용
바. 항공력에 의한 시가전 수행
사. 다출처 첩보를 활용한 정보력의 향상


항공력은 전쟁 승리의 핵심 요소 재확인 

이라크전쟁은 26일 만에 연합군측의 일방적인 승리로 종결되었다. 항공력은 미국이 주도한 최근의 전쟁(걸프전쟁∼아프간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대의 군사력 및 전략을 무력화시켜 전쟁을 성공적으로 종결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연합군의 항공력은 기후나 지형의 문제를 극복하고, 이라크에게 “충격과 공포”를 조성하는데 탁월한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결국 이라크는 전쟁수행 체계가 마비되고 의지가 소멸되어 무기력하게 붕괴되고 말았다. 연합군이 이러한 완벽한 승리를 얻게 된 것은 공중우세와 제공권을 확보함으로써 가능하였다. 이라크 지휘부에 대한 “참수공격”과 “충격과 공포 작전”도 개전하기 이전부터 수행된 항공작전에 의해 이라크 방공능력이 무력화된 상태에서 수행된 것이었다. 미·영 연합군은 2002년에도 이라크 방공망에 대하여 400회 이상을 공격한 바 있었다. 연합군이 개전 직후 14시간 만에 지상군을 투입하고 바그다드를 함락하기까지 21일 동안 별다른 저항없이 지상전을 수행하였던 것도 공중우세의 상황 하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연합군의 항공력은 자신의 지상군이 공격받을 수 있는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여 이라크군이 침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이라크 전쟁은 공중우세의 확보가 항공작전이나 지상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보편적인 조건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전쟁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충격과 공포를 조성함에 있어서 항공력이 가장 효과적인 요소라는 것도 입증하였다. 반면에 이라크 측의 관점에서 본다면 항공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할 경우, 아무리 강력한 무기체계나 전쟁수행 의지를 갖고 있더라도 전쟁다운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도록 한 전쟁이었다. 앞으로의 전쟁에서도 공ㆍ지ㆍ해상군의 자유로운 작전수행을 보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달성해야 할 최우선적 목표가 공중우세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

 

핵심표적에 대한 동시공격을 통한 효과 극대화

 

<바그다드 방송시설 공격>


걸프전쟁에서 다국적군은 공격해야할 표적의 숫자에 비해 항공전력과 정밀도가 제한받았기 때문에 이라크군의 전쟁의지와 전투지속 능력을 파괴하기 위해 순차적인 공격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1단계로 지휘통제기구나 대량살상무기 공장을 공격하였고 2단계로는 항공우세를 획득하기 위해 레이더기지, 비행장, 지대공 유도탄기지를 파괴시켰으며, 그 후에는 보급선 차단이나 작전지역 고립을 위한 표적들과 이라크 지상군에 대하여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라크전쟁에서는 핵심표적을 동시에 공격하여 공중공격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연합군은 전쟁초기 이라크의 중심인 후세인과 전쟁지휘통제기구에 집중하여 이라크의 전쟁수행 의지 조기말살을 시도하면서 정치ㆍ군사본부, C4시설 등을 무력화 시키는 등 전략목표에 항공력을 집중하여 동시공격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동시공격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확도가 향상된 정밀유도무기와 스텔스기의 사용에 있었다. 그 결과, 다수의 항공전력을 투입하였던 ‘공격편대군(Strike Package)’ 개념이 변경되어 항공기 운용의 융통성이 높아졌다. 또한, 레이더기지, 비행장, 지대공 유도탄기지 등과 같은 제공표적의 소멸로 인하여 표적당 필요한 항공기 투입에 여유가 생겼다. 제공표적이 소멸된 이유는 걸프전쟁 이후 12년간에 걸친 ‘비행금지구역설정 운영’ 및 ‘사막의 여우(Desert Fox) 작전’ 같은 공중공격으로 제공표적인 레이더 기지나 지대공 유도탄 기지 같은 방공망이 거의 괴멸된 상태였기 때문이며, 연합군은 더 이상 제공 표적에 대한 공격이 필요가 없었으므로 전쟁초기부터 제공권 장악을 선포할 수 있었다.
또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게 된 원인 중의 하나는, 산업기반시설을 파괴하여 이라크의 전쟁지속능력을 말살시킨다는 전쟁 개념에서 후세인 및 추종세력과 이라크 국민을 분리시키고 전쟁 후 이라크의 재건을 위해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산업기반시설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방향으로 방침을 전환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과거의 전쟁에서 표적으로 선정되었던 발전소, 댐, 산업시설, 교량 등 산업기반시설을 표적목록에서 제외함으로써 전략표적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었다.
한때 모래폭풍 및 연합군 보급로에 대한 이라크군의 산발적인 공격으로 미 지상군의 진격이 영향을 받기도 했으나 항공력을 최강의 공화국 수비대공격에 집중하여 괴멸시킴으로써 바그다드까지 별다른 저항없이 진격할 수 있었다. 연합군이 지상군 지원에 많은 항공력을 투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밀폭격능력이 향상되었고 제공 표적이 소멸되었기 때문이었다.

항공무기의 획기적 발전

<항모에 탑재되어 있는 합동직탄 (JDAM)> 

 

걸프전쟁에서 사용되었던 항공기 기종이 12년이 지난 이라크전쟁 에도 그대로 사용되는 등 항공기 분야의 뚜렷한 발전은 없었으나, 연합군측의 항공전력은 걸프전쟁에 비해 훨씬 강력해 졌는데 이는 가공할 위력의 첨단무기로 무장되었기 때문이었다.
모래 폭풍을 뚫고 남하하던 이라크 지상군의 기갑/기계화 부대가 괴멸된 것은 신형 확산탄인 CBU-105/B에 의해 이루어졌다. 폭격기에서 처음 사용한 CBU-105/B는 3만피트(10km) 상공에서 투하시 30피트(10m)의 정확도를 가지고 이동중인 적 기갑부대를 파괴시켰다. 공중에 확산된 10개의 자탄으로부터 분리된 40개의 소폭탄은 철판 115cm를 뚫을 수 있는 관통력으로 적외선 감지장치를 작동하여 각기 차량의 엔진부분을 정확히 타격하였으며, 폭탄 피해 범위인 500m×250m 넓이에 있는 어떠한 표적도 빠져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위력적인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라크전쟁에서는 모든 전자장비를 마비시키는 ‘EMP탄’과 ‘MOAB’ 같은 대형 폭탄이 관심을 끌었으며, 가장 큰 성과를 거둔 무기는 ‘합동직격탄(JDAM : Joint Direct Attack Munition)’과 바람수정 확산탄인 CBU-105/B이었다. 이들은 기존의 공중공격전술을 일거에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무장으로 평가받았다.
‘합동직격탄(JDAM)’은 주ㆍ야간/전천후 정밀공격이 가능하고, 조종사가 표적을 식별해야 하는 임무부담이 없으며, 무장의 폭발로 발생하는 연막차폐에 따른 작전제한 없이 주변의 여러 표적에 대한 동시 공격이 가능하고, 레이저유도폭탄(LGB : Laser Guided Bomb)처럼 표적을 계속 포착할 필요없이 무장을 발사 후에는 목표지역을 신속히 이탈, 위험지역을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만, 목표 상공으로 비행해야하므로 적 방공방어망이 활동 중인 곳에서의 운용은 제한되었다.
모래 폭풍을 뚫고 남하하던 이라크 지상군의 기갑/기계화 부대가 괴멸된 것은 신형 확산탄인 CBU-105/B에 의해 이루어졌다. 폭격기에서 처음 사용한 CBU-105/B는 3만피트(10km) 상공에서 투하시 30피트(10m)의 정확도를 가지고 이동중인 적 기갑부대를 파괴시켰다. 공중에 확산된 10개의 자탄으로부터 분리된 40개의 소폭탄은 철판 115cm를 뚫을 수 있는 관통력으로 적외선 감지장치를 작동하여 각기 차량의 엔진부분을 정확히 타격하였으며, 폭탄 피해 범위인 500m×250m 넓이에 있는 어떠한 표적도 빠져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위력적인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Real Time Sensor to Shooter의 실현 가능성 증명

<후세인이 있다는 정보에 따라 미군이 폭격한 시내 지역 주택단지 인가 잔해>

 

전투 의사결정 순환체계(O-O-D-A Loop)의 혁신적 시간단축과 Sensor-to- shooter 체계발달로 긴급 표적 타격능력이 대폭 신장되었다. 공세적 정보제압작전을 통해 정보우세를 달성함으로써 이라크의 전투 의사결정 순환체계는 거의 마비되었으며, 반면 연합군의 전투 의사결정체계는 압도적인 첨단 정보자산과 정밀공격체계에 의해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 졌다.
향후에도 정보수집부터 타격까지의 반응시간의 단축은 지속될 것이며 항공력은 ‘Real Time Sensor to Shooter(정보수집 즉시 타격)’를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전력으로 신속성을 중시하는 현재와 미래의 군사전략에 있어 중심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미 특수요원들이 바그다드의 중심 ‘알 만수르’ 지역 주택단지 안가에서 후세인 대통령을 비롯한 이라크 지휘부가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펜타곤으로 보고한 뒤 45분만에 미 공군기에서 투하한 4발의 2000파운드 정밀유도 무기에 의해 안가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공중공격 임무를 수행중이던 조종사가 비행도중 표적변경을 통보받고 12분만에 정밀 공중공격을 실시함으로써 정보수집부터 표적 타격까지 근실시간(near real time) 임무수행이 가능할 정도로 반응시간이 단축되었다.
반응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던 것은 항공기에 장착된 장비를 개량하여 공중에 체공중인 항공기 안에서도 정밀 유도무기의 표적 좌표를 수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걸프전쟁 당시에는 이러한 정밀 유도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항공기가 20% 밖에 안 되었으나, 이라크전쟁에서는 모든 항공기가 정밀 유도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향후에도 정보수집부터 타격까지의 반응시간의 단축은 지속될 것이며 항공력은 ‘Real Time Sensor to Shooter(정보수집 즉시 타격)’를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전력으로 신속성을 중시하는 현재와 미래의 군사전략에 있어 중심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

 

물리적/심리적 마비전략 적용

연합군은 단기전 수행의 전략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이라크 국민을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개념1)을 적용하여 전쟁을 수행하였다. 이 전략의 핵심은 압도적 힘의 우위를 보여줌으로써 적의 항복을 받아내고 인명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것이었다. 전략적 마비 달성을 위한 공중공격은 개전 초 ‘참수공격’(Decapitation Attack) 으로 이라크의 전략적 중심인 후세인과 핵심지휘부를 제거하려 했다. 이는 단기간 내에 이라크의 국가지도체제와 군사 지휘기구를 무력화하여 조기에 전쟁승리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개전초 1,000여 개의 기계획된 표적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고 전쟁 중 이라크의 국가지도체제와 군사지휘기구 및 지휘통제체제에 대한 공중공격은 지속적으로 실시되었다. 전략마비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정밀 공습이 가능한 항공자산과 정밀유도무기,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사용하였다. 걸프전쟁 이후 정밀유도무기의 사용은 급격히 증가되고 있으며, 정밀공격 능력의 신장은 전쟁의 조기 종결 및 저비용전쟁을 가능하게 하였다.

연합군은 단기전 수행의 전략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이라크 국민을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개념1)을 적용하여 전쟁을 수행하였다. 이 전략의 핵심은 압도적 힘의 우위를 보여줌으로써 적의 항복을 받아내고 인명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것이었다. 전략적 마비 달성을 위한 공중공격은 개전 초 ‘참수공격’(Decapitation Attack) 으로 이라크의 전략적 중심인 후세인과 핵심지휘부를 제거하려 했다. 이는 단기간 내에 이라크의 국가지도체제와 군사 지휘기구를 무력화하여 조기에 전쟁승리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개전초 1,000여 개의 기계획된 표적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고 전쟁 중 이라크의 국가지도체제와 군사지휘기구 및 지휘통제체제에 대한 공중공격은 지속적으로 실시되었다. 전략마비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정밀 공습이 가능한 항공자산과 정밀유도무기,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사용하였다. 걸프전쟁 이후 정밀유도무기의 사용은 급격히 증가되고 있으며, 정밀공격 능력의 신장은 전쟁의 조기 종결 및 저비용전쟁을 가능하게 하였다.​

 

최근 전쟁시 사용된 정밀유도 무기

 출처 : CSIS, "US Airpower in Recent Regional Conflicts", "The Instant Lessons of the Iraq War Executive Summary" (2003. 5) 전쟁비용 : 걸프전 610억불, 베트남전 4,940억불, 한국전 3,030억불, 이라크전 256억불(동아일보 2003. 4. 16)

또한, 신속성과 편재성(모든 지역을 방해받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특성)을 보유한 항공력을 사용함으로써 이라크군에게 심리적이며 시간적인 마비를 유발하였다. 현대전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계속되는 군사혁신을 통하여 정보전, 지휘통제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됨으로써 표적획득부터 의사결정을 통해 공격하는 단계까지 최단 시간 내에 완료가 가능하게 되었다. 표적획득, 의사결정, 임무완료까지의 순환 시간을 최소화함으로써 적이 대처할 수 없게 하여 마비를 달성하였다. 빠른 주기의 순환을 가능하게 해주는 핵심요소는 항공력이었다. 항공력을 통해 정확한 정보획득 과 신속한 의사결정 및 지휘통제체제, 그리고 이러한 순환의 최종 실행단계인 신속하고 정밀한 타격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항공력에 의한 시가전 수행

감시와 표적획득을 위해서 프레데터와 글로벌호크 등 무인항공기를 운용하고, 획득된 표적정보를 통제센터에 실시간 전송하여 분석 및 공격을 결정하게 하였다. 통제센터는 공격이 결정된 표적에 대한 공격명령과 표적정보를 체공중인 항공기에 전파하였으며, 야간 및 악천후 상황에서도 다양한 무장을 탑재한 공격기들이 바그다드 상공에서 체공하다가 공격명령 수령 후 임무에 투입되었다. 공격기 탑재무장은 정밀공격에 적정한 무장으로 장애물이 조밀한 지역에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파괴력이 비교적 적은 500파운드 폭탄이나 시멘트 폭탄 등을 사용하였다. 공격기들은 지상군의 요청에 신속한 대응과 다양한 공격이 가능하도록 최대 체공을 위한 연료와 최대한의 무장을 탑재하였다.

 

이라크 전쟁은 항공력으로 도심의 표적을 공격하여 아군이나 민간인 피해 없이 큰 효과를 낼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향후 전쟁 양상은 저강도 분쟁 등과 같은 비재래식 소규모 분쟁 및 평화유지 작전 등에서 시가전 및 게릴라전 양상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 장시간 감시가 가능하고 정확한 표적 획득이 가능한 체제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게릴라전시 장기 체공이 가능하고 적정무장을 탑재할 수 있는 항공기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수단에 의하여 획득된 정보를 타격수단까지 신속하게 전파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하고 시가전을 포함한 게릴라전에서의 항공력 운용 방안 및 교리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다출처 첩보를 활용한 정보력의 향상

<무인 정찰기 글로벌 호크(좌)와 프레데터(우)>

이라크전쟁에서는 전 전장을 가시화하기 위해 다양한 우주 및 항공자산을 운용하였다. 걸프전쟁에서 사용된 무인정찰기는 ‘파이오니어(Pioneer)’ 정도였 으나 이라크전쟁에서는 10종류 이상의 무인정찰기를 투입하였다.  

무인정찰기뿐만 아니라 E-2C, EP-3E, EA-6B, U-2, AWACS, RC-135, J-STARS 같은 항공자산 및 군사위성체계를 활용하여 정보를 수집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걸프전쟁시는 표적탐지능력이 15% 정도였으나 이라크전쟁에서는 표적탐지능력이 획기적 으로 향상되어 70% 이상으로 추정되었다.
수집된 정보를 디지털화된 C4ISR의 네트워크로 연결 전장정보를 공유한 가운데 미 본토에서부터 영국, 독일, 중동 지역까지 지리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전력이나 부대를 전장으로 전개시키지 않고도 다수의 상이한 지역표적에 대해 전력을 집중시켜 동시 공격을 수행,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이라크전쟁은 최첨단 정찰장비 못지않게 인간정보의 중요성이 돋보인 전쟁이었다. 특히, 미군 특수작전부대와 미 중앙정보국(CIA)요원들이 전쟁개시 전부터 전쟁수행중 이라크군의 주요지휘소와 진지의 위치, 규모 등을 정확히 알려주어 토마호크나 정밀 유도무기로 지휘부 및 이라크군을 무력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개전 전에 토마호크 미사일을 이용하여 후세인의 은신처를 공격한 것과 후세인을 비롯한 측근들의 회의장소라 추정되는 건물을 2,000파운드 폭탄 4발로 초토화시킨 것은 인간정보의 중요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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